지혜/시모음

[스크랩] 11월에 관한 시

woo2park 2008. 11. 10. 14:36

 11월에 관한 시

 

  내가 사랑하는 계절 ㅡ 나태주

  다시 11월 ㅡ 박영근

  무등차 ㅡ 김현승

  11월 ㅡ 고재종. 나희덕. 박영근.서정춘. 이외수. 정끝별. 조용미. 최정례.황인숙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ㅡ 정희성

  11월의 나무 ㅡ 황지우

  11월의 나무처럼 ㅡ 이해인

  11월의 노래 ㅡ 김용택

  11월을 빠져나가며 ㅡ 정진규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서 ㅡ 김동규

  11월 저녁 ㅡ 정수자

  입동 이후 ㅡ 이성선

  입동 저녁 ㅡ 이성선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울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슬픔에 손목 잡혀서> 시와 시학사.

 

 

다시 11월     박영근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

 

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뿐

 

시 한 줄 없이 바람 속에 시들어

눈 속에 그대로 매서운 꽃눈 틔우리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1997년

 

 

        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뿐

 

                            가을의 전설 1994년

 

무등차  김현승(1913 - 1975)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11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양 마음에 젖는다

 

 

 

11월        고재종

갱변의 늙은 황소가 서산 봉우리 쪽으로 주둥이를 쳐들며 굵은 바리톤으로 운다

밀감빛 깔린 그 서쪽으로 한 무리의 고니가 날아 봉우리를 느린 사박자로 넘는다

그리고는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늦가을 저녁이 있다

소소소 이는 소슬바람에 갈대숲에서 기어나와 마음의 등불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그때다

 

 

11월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에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넣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벤허  1959년 

  

11월         박영근

바람은

나무들이 끊임없이 떨구는 옛기억들을 받아

저렇게 또다른 길을 만들고

홀로 깊어질 만큼 깊어져

다른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우리들 그 헛된 아우성을

쓸어주는구나

 

혼자 걷는 길이 우리의 육신을 마르게 하는 동안

떨어질 한 잎살의 슬픔도 없이

바람 속으로 몸통과 가지를 치켜든 나무들

 

마음 속에 일렁이는 殘燈이여

누구를 불러야 하리

부디

깊어져라

삶이 더 헐벗은 날들을 받아들일 때까지

 

 

 

11월           서정춘

단풍! 좋지만

내 몸의 잎사귀

귀때기가 얇아지는 11월은 불안하다

 

어디서

죽은 풀무치 소리를 내면서

프로판가스가 자꾸만 새고 있을 11월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마에스트로

 

            

11월           정끝별

기와를 넘는 개오동나무 그늘은 살얼음을 만들지

밤이면 바람은 웅웅 얇은 창호지문을 흔들어

어린 영혼에 커다란 손자국을 내고 지나갔지만

유독 빈 축사에 가득했던 갓 구운

한낮의 햇살을 좋아했어 호박오가리처럼 앉아

검은 옷자락에 싸여있던 白木의 수녀원 앞들과

잿빛 장삼을 끌고가는 맨머리가 무서워

울곤 했어 스스로를 감추려고 푸른 이끼를 덮어쓴

얼음 같았던 사람들

낯선 것들은 그렇게 세상 밖에 있었던 거야

오일장이면 얼굴에 회칠을 한 미친 여자는

여자만 보면 욕을 했어 머리가 숭숭 빈

문둥이나 걸인도 많아 나는 턱숨세워

달리곤 했지 한결같이 웅크린 채 좁아만 들던

그 길에서 엄마 손을 놓칠 때마다 덮쳤던

아모레 아모레미오 노란 꽃 낯선 것들의 오한

다투는 소리 뿌연 쌀먼지로 일던 네거리 정미소집에

굳게 닫혀있던 긴 욕설들 누구였을까

유난히 그늘 깊은 영산강물에 담댕이 햇살에

함부로 나를 심더니 통채로 뽑아버린 일곱 살

가시처럼

낯설어 멀기만한 그 십일월

  

 

 

11월        조용미

한밤

물 마시러 나왔다 달빛이

거실 마루에

수은처럼 뽀얗게 내려앉아

숨쉬고 있는 걸

가만히 듣는다

 

창 밖으로 나뭇잎들이

물고기처럼

조용히 떠다니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드가 

 

 

11월       최정례

느닷없이 큰 곰이

천장까지 닿는 검은 그것이 나타나

우리집 고양이를 아이들을 때려눕히고

나를 그러면?

함께 살자고 하면?

이 집 커튼을 찢고 들어와

돌이 된 내 심장을 두들기며

그러면 어떡하지?

창문의 불빛을 훔쳐보다가

느닷없이 현관문에 피아노에

차압딱지를 붙이는 집달리처럼

11월 어느 날

무심한 곰의 얼굴로 들이닥쳐서

TV에서 배 두들기며 웃는 코미디언들

얼굴 위에 재를 뿌리고

소파 위에 내 손바닥 위에

뜨거운 석탄을 올려놓으면

그러면?

이 집 사느라 진 빚

이자의 이자 때문에

넌 역전 앞에 가 신문지나 덮고 누워 있어라

그러는데도

기대고 싶고 조금은 은근히 살고 싶어지면

그러면?

 

 

 

11월          황인숙

너희들은 이제

서로 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된

11월

 

엄마, 잠깐 눈 좀 감아봐! 잠깐만

 

잠깐 잠깐 사이를 두고

은행잎이 뛰어내린다

11월의 가늘한

긴 햇살 위에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정희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한희원 ㅡ 여수로 가는 막차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11월의 나무처럼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11월의 노래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11월을 빠져나가며       정진규

흙담장에 걸린 먼지투성이 마른 씨래기 다발들

남루한 내 사랑들이 버석거린다

아직도 이파리들 땅에 내려놓지 못할 몇 그루 은행나무들이 이해되지 않으며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다른 이들의 철 지난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다

혼자서 돌아오는 밤거리 골목길에 버려진 고양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나는 자꾸 올라가고 있는데 계단들은 그만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비어지고 있다

빈 계단들이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이제 너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위기로만 남아 있구나

골목길 들어서면 겨우 익숙한 저녁 냄새만 인색하게 나를 달랜다

이 또한 전 같지 않다

12월 때문에 11월은 가장 서둔다

끝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들통나고 있다

야적까지 하고 있는 빈터, 그빈터에서도 우리도 서둘러 끝내자

내리는 눈이라도 기념으로 맞아두자

마른 풀대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무와 나무들 사이가 분명해지고

강가에 서면 흐르는 물소리들도 한껏 야위어 속살 다아 보인다

서로 벌어져 있다

가장 견고하다는 네 사유의 책갈피도 여며지지 않는다

머물렀다고 할 수 없다

서둘러 11월은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서       김동규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娼婦의 賣笑같은 까칠한 소리로

살과 살을 비벼대다 드러눕던 몸짓,

바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혼절하는 몸소리로 제 허리를 꺾어

속 대를 쥐어 틀어 물기를 말리고

타오르는 들불의 꿈을 꾸며 잠이 든

늙은 갈대의 가쁜 숨소리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는,

빠른 걸음으로 노을이 오고

석양마다 숨이 멎던, 하루를 또 보듬으며

목 젖까지 속울음 차오르던 소리를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11월 저녁         정수자

다 해진 길을 끌고 가을이 가고 있다

목마다 목이 시린 시래기 같은 시간들

그어귀 외등을 지나는

당신 등도 여위겠다

가으내 비색에 홀린 바람의 당혜 같은

귀 여린 잎사귀도 먼 곳 향한 귀를 접고

제 안의 잎맥을 따라

한 번 더 저물겠다

 

          앤 해서웨이(1982 - ) 미국

 

                          

입동이후         이성선          입동 ㅡ 양력 11월 7일경

가을 들판이 다 비었다

바람만 찬란히 올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비었다

누가 또 올 것이냐

 

저녁 하늘 산머리

기러기 몇 마리 날아간다

 

그리운 사람아

내 빈 마음 들 끝으로

 

그대 새가 되어

언제 날아올 것이냐

 

 

 

 

입동저녁       이성선

벌레소리 고이던 나무 허리가 움푹 패였다

잎 없는 능선도 낮아져 그 아래 눕는다

가지 하나가 팔을 벌여 내 집을 두드린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라만 본다

저문 시간이 고개 숙이고 마을을 서성거리고

그의 머리 위로 별이 벼꽃처럼 드물다

낡은 문창에 달빛이 조금씩 줄어든다

달 내리는 소리가 마당을 지나 헛간에 머문다

누군가 떠나고 난 자리가 세상보다 크고 깊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하와이     마우이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 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

 

 

출처 : 동해물과 백두산이
글쓴이 : 아침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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